“누군가를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빈 가슴에 품는 것보다, 더 깊고, 더 진하게. 있는 그대로 마음에 스며드는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될 거야. 그렇게 말씀하셨어.”

가윤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엄마다웠다.

친자식인 승윤과 가윤보다 오히려 재희를 더욱 살갑게 챙기는 엄마였지만, 서운하다 여긴 적은 거의 없었다. 제자였던 재희를 지금은 작은아들이라 칭하며 진심으로 안아 주시는 분이었다.

“여자로 좋아한 게 아니고, 단지 엄마를 그리워했던 마음이란 걸 확인하게 돼서, 정말 다행이야.”

다시 한 번 그는 다행이라 말했다. 재희는 편안한 미소를 가득 짓고 있었다.

그런 그를 흔들면 안 되는데. 이제야 마음을 다 정리하고 내려놓은 그를 흔들면 안 되는데.
저렇게 편해 보이는 사람을 흔들어서는 ……안 되는데.

가윤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안 되는데. 안 되는데.

철썩. 부딪치는 파도 소리가 가만히 들려왔다.

방해.

그의 여행을.
그의 휴식을.
그의 평온을.

그를 방해하고 싶었다. 자신을 새겨 넣고 싶었다.

나도 당신을 흔들 수 있다고. 어지럽게 만들 수 있다고. 당황시킬 수 있다고.
여동생인지, 여자인지. 그 세찬 혼돈 속에서 나를 제대로 한 번 봐 달라고.
어디 이 마음이 착각인지 아닌지. 당신, 내 사랑을 가늠할 수 있겠냐고.

가윤은 가만히 눈을 떴다.

한 번쯤, 뒷일 생각하지 않고 미쳐보아도 좋지 않을까. 착각과 사랑을 구분할 수 있다면. 그런 기회가 온다면. 자신도 지금보다는 편안해질 수 있지 않을까.

잠시 머물다 갈 이곳에서 둘만 간직할 비밀 하나쯤, 만들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다면 잃지 않고도 끝을 확인할 수 있을지 모른다.

두 사람만 잊어버리면 그뿐이니까.

“오빠.”

두꺼운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그의 정갈한 옆선을 눈에 담았다. 재희가 고개를 돌려 가윤을 보았다.

세차게 뛰는 심장을 애써 누르고 입을 열었다. 속내와는 다르게 건조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내가 오빠를 참 좋아하거든.”

“나도 우리 가윤이 좋아하지.”

당연하다는 듯 바로 대꾸하는 그에게 물었다.

“……내가 오빠를, 오빠로 좋아하는 걸까. 남자로 좋아하는 걸까.”

바다의 짠 내음이 불어와 묻었다. 목소리는 조금 젖어들었다.

“이 마음이 착각인지, 사랑인지, 알아보고 싶은데.”

“…….”

“오빠, 오늘 나랑…… 자고 가.”